삶이란 나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여행길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이 물음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살아간다.
몇 천 년 전에도 몇 백 년 전에도 지금도 사람들은 길을 묻고 있다.
그래서 길을 묻고 길을 찾아 떠나는 우리는 모두 도인이다.
지금 힘이 든다면 다음 사실은 명확하다.
①등에 진 짐이 무겁다.
②길을 잃었다.
③잃어버린 길을 눈으로 찾고 있다.
정리하자면 길을 잃었는데 눈으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전 지구인이 수 천 년 간 찾지 못 한 길이라면
찾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마음으로 찾아야 한다.
마음으로 찾아
좌표를 정하고
자동항법장치를 달 수 있다면 좋겠다.
가는 길 고비고비에
내비게이션이 작동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태어나고 부모형제를 선택하고
건강, 학교, 직장, 결혼, 승진,
보수, 재산, 인복, 퇴직, 죽음 등은
인생에 매우 중요한 일들이다.
이들이,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뜻대로 되는 일도 있고 되지 않는 일도 있는데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더 많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것들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
그렇다면 누구에 의해서?
신과 하늘에 의해서.
여기서 신이란 나의 혼이고 하늘이란 나의 영을 말한다.
나라는 존재는
200의 백과 2000의 혼과
20000의 영으로 되어 있다.
현상계에서는 200의 백 만이 발현되고
2000, 20000은 나 안의 나로 존재한다.
나의 세상살이는 2000의 혼과
20000의 영이 설계한 작품이다.
2000 그 이상의 원리에 의해 돌아간다.
현상계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머리는 200미만이다.
200미만의 머리로 2000 이상의 바다를 살아내기가 쉬운가?
힘들고 상처받지 않을까?
근심, 걱정, 불안, 공포, 우울,
슬픔, 아만, 악, 분노, 집착, 욕심, 내면아이, 천벌, 종교의 영, 만신 등은
200이 살아내며 받은 상처의 흔적들이다.
2000 그 이상의 세상에 200 미만의 머리로 살아내야 하다니
누가 이런 설계를 했을까?
하늘님이다.
아니, 하늘님이 술이 취했나,
아니면 심술을 부리는가?
그럴리야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 대부분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늘님의 뜻을 읽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태국 방콕 근처에
높이가 3m, 무게가 5.5t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황금불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미얀마라고 하는 버마가 쳐들어 오고 있다.
마을과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을 학살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침략군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약탈자들이 황금불상을 그대로 둘리가 만무하다.
큰일이다.
황금불상을 모시는 스님들 입장에서 큰 일이 났다.
불상이 워낙 커서 옮길 수가 없다.
머리를 썼다. 회반죽을 덮어 씌웠다.
스님들의 재치로 황금은 회반죽이 되어
불상은 약탈의 화를 면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스님들은 학살의 칼날을 피하지 못 하고 모두 죽었다.
그 후로 이 불상은 회반죽으로 된 진흙 불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게 2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1950년 대에
불상을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로 떨어뜨렸는데
밤에 금이 간 회반죽 사이로 새어나온 금빛을 보고
회반죽을 뜯어보니 황금불상 이었다.
이 이야기가 전세계로 알려지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황금이 아닐까?
내 안에 황금과 같은 귀한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늘은 인간으로 하여금
2000 이상의 바다에 200 미만의 머리로 살아가게 설계하였다.
인생은 고해의 바다라는 말이 있다.
바람 불고 파도치는 2000 이상의 바다는
200 미만의 머리로 살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들지 않은가?
현상계에 빠져 일렁이는 이기심과 욕망에 눈이 먼
200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2000의 세상살이!
나 안의 나, 2000, 20000인 나의 본 모습을 찾으라는 뜻은 아닐까?
내 안의 내가 깨어나면 2000 그 이상의 세상도 살아내지 않을까?
그럼 진짜 내 안에 2000인 내가 있는가?
황금불상이 있는가?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영역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런데 오장육부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들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되어있다.
200이 직접 관여하지 않는데도 기차게 잘 돌아간다.
200 이상의 지성이 관리하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한 두 번쯤은 예지나 텔리파시를 경험했을 것이다.
200의 영역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새싹회에는 기통자들이 연일 나오고 있다.
기통 후 실습과정으로 원격 운기활공을 한다.
카페에 댓글을 단 사람들의 닉네임만 보고 기를 공유한다.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100명이 넘는다.
기를 보내는 사람은 이들 중 직접 아는 사람은 10명이 채 안 된다.
나머지 90여명은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 한다.
그런데 기운이 귀신같이 찾아간다.
200의 영역으로만 설명이 가능한가?
10명의 사람들을 앞에 두고 운기활공을 한다.
이 10명은 물론 서울, 부산, 경주, 진주, 뉴욕 등 다른 장소에 있다.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가면 바로 내 앞 한 공간에 머물게 된다.
운기활공을 하면 10명에게 각기 다른 기운들이 들어간다.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운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10명의 진단과 정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는 200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기통을 하고 어느 정도 열리면
전생을 보고 미래를 예지하고 몸 속을 보거나 느끼는 것이 가능해진다.
멀리 미국이나 일본,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몸 냄새나 몸 상태, 마음 상태를 감지하고 정화할 수 있다.
진흙 불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내 안에 2000 그 이상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가?
참 괜찮은 내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가?!
그렇다면 200짜리 보다 2000 이상인 내가
2000이상인 세상을 헤치고 살면 되지 않을까?
애초부터 그렇게 살라고 설계된 것은 아닐까?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인생살이 이지 않을까?
몸은 마음을 닦는 도량이라고 했다.
몸이 돌아가는 원리를 잘 이해하면
마음을 어떻게 가다듬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팔, 다리, 목 등은 비교적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반면에
오장육부, 뇌 등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왜일까?
보다 중요하니까.
하늘은 보다 중요한 것들은 200에게 맡기지 않았다!
인생살이도 그렇지 않을까?
보다 중요한 것들은 200의 영역이 아니지 않을까?
경험으로 이미 알지 않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이 물음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살아간다.
몇 천 년 전에도 몇 백 년 전에도 지금도 사람들은 길을 묻고 있다.
그래서 길을 묻고 길을 찾아 떠나는 우리는 모두 도인이다.
지금 힘이 든다면 다음 사실은 명확하다.
①등에 진 짐이 무겁다.
②길을 잃었다.
③잃어버린 길을 눈으로 찾고 있다.
정리하자면 길을 잃었는데 눈으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전 지구인이 수 천 년 간 찾지 못 한 길이라면
찾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마음으로 찾아야 한다.
마음으로 찾아
좌표를 정하고
자동항법장치를 달 수 있다면 좋겠다.
가는 길 고비고비에
내비게이션이 작동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태어나고 부모형제를 선택하고
건강, 학교, 직장, 결혼, 승진,
보수, 재산, 인복, 퇴직, 죽음 등은
인생에 매우 중요한 일들이다.
이들이,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뜻대로 되는 일도 있고 되지 않는 일도 있는데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더 많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것들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
그렇다면 누구에 의해서?
신과 하늘에 의해서.
여기서 신이란 나의 혼이고 하늘이란 나의 영을 말한다.
나라는 존재는
200의 백과 2000의 혼과
20000의 영으로 되어 있다.
현상계에서는 200의 백 만이 발현되고
2000, 20000은 나 안의 나로 존재한다.
나의 세상살이는 2000의 혼과
20000의 영이 설계한 작품이다.
2000 그 이상의 원리에 의해 돌아간다.
현상계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머리는 200미만이다.
200미만의 머리로 2000 이상의 바다를 살아내기가 쉬운가?
힘들고 상처받지 않을까?
근심, 걱정, 불안, 공포, 우울,
슬픔, 아만, 악, 분노, 집착, 욕심, 내면아이, 천벌, 종교의 영, 만신 등은
200이 살아내며 받은 상처의 흔적들이다.
2000 그 이상의 세상에 200 미만의 머리로 살아내야 하다니
누가 이런 설계를 했을까?
하늘님이다.
아니, 하늘님이 술이 취했나,
아니면 심술을 부리는가?
그럴리야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 대부분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늘님의 뜻을 읽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태국 방콕 근처에
높이가 3m, 무게가 5.5t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황금불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미얀마라고 하는 버마가 쳐들어 오고 있다.
마을과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을 학살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침략군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약탈자들이 황금불상을 그대로 둘리가 만무하다.
큰일이다.
황금불상을 모시는 스님들 입장에서 큰 일이 났다.
불상이 워낙 커서 옮길 수가 없다.
머리를 썼다. 회반죽을 덮어 씌웠다.
스님들의 재치로 황금은 회반죽이 되어
불상은 약탈의 화를 면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스님들은 학살의 칼날을 피하지 못 하고 모두 죽었다.
그 후로 이 불상은 회반죽으로 된 진흙 불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게 2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1950년 대에
불상을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로 떨어뜨렸는데
밤에 금이 간 회반죽 사이로 새어나온 금빛을 보고
회반죽을 뜯어보니 황금불상 이었다.
이 이야기가 전세계로 알려지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우리는 진흙이 아니라 황금이 아닐까?
내 안에 황금과 같은 귀한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늘은 인간으로 하여금
2000 이상의 바다에 200 미만의 머리로 살아가게 설계하였다.
인생은 고해의 바다라는 말이 있다.
바람 불고 파도치는 2000 이상의 바다는
200 미만의 머리로 살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들지 않은가?
현상계에 빠져 일렁이는 이기심과 욕망에 눈이 먼
200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2000의 세상살이!
나 안의 나, 2000, 20000인 나의 본 모습을 찾으라는 뜻은 아닐까?
내 안의 내가 깨어나면 2000 그 이상의 세상도 살아내지 않을까?
그럼 진짜 내 안에 2000인 내가 있는가?
황금불상이 있는가?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영역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런데 오장육부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들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되어있다.
200이 직접 관여하지 않는데도 기차게 잘 돌아간다.
200 이상의 지성이 관리하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한 두 번쯤은 예지나 텔리파시를 경험했을 것이다.
200의 영역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새싹회에는 기통자들이 연일 나오고 있다.
기통 후 실습과정으로 원격 운기활공을 한다.
카페에 댓글을 단 사람들의 닉네임만 보고 기를 공유한다.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100명이 넘는다.
기를 보내는 사람은 이들 중 직접 아는 사람은 10명이 채 안 된다.
나머지 90여명은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 한다.
그런데 기운이 귀신같이 찾아간다.
200의 영역으로만 설명이 가능한가?
10명의 사람들을 앞에 두고 운기활공을 한다.
이 10명은 물론 서울, 부산, 경주, 진주, 뉴욕 등 다른 장소에 있다.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가면 바로 내 앞 한 공간에 머물게 된다.
운기활공을 하면 10명에게 각기 다른 기운들이 들어간다.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운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10명의 진단과 정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아는 200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기통을 하고 어느 정도 열리면
전생을 보고 미래를 예지하고 몸 속을 보거나 느끼는 것이 가능해진다.
멀리 미국이나 일본,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몸 냄새나 몸 상태, 마음 상태를 감지하고 정화할 수 있다.
진흙 불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내 안에 2000 그 이상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가?
참 괜찮은 내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가?!
그렇다면 200짜리 보다 2000 이상인 내가
2000이상인 세상을 헤치고 살면 되지 않을까?
애초부터 그렇게 살라고 설계된 것은 아닐까?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인생살이 이지 않을까?
몸은 마음을 닦는 도량이라고 했다.
몸이 돌아가는 원리를 잘 이해하면
마음을 어떻게 가다듬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팔, 다리, 목 등은 비교적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반면에
오장육부, 뇌 등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왜일까?
보다 중요하니까.
하늘은 보다 중요한 것들은 200에게 맡기지 않았다!
인생살이도 그렇지 않을까?
보다 중요한 것들은 200의 영역이 아니지 않을까?
경험으로 이미 알지 않는가?
하늘은 200에게만 다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200은 자기가 유일한 주인이고 대장이고 전부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다 해결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내 안에 참 괜찮은 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 안의 내가 살아나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자기가 전부라 생각하며
바들바들 떨며 잡고 있는 핸들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바람 불고 파도치는 2000의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잡고 있는 그 핸들을 제발 좀 놓아보자.
할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은
내려놓고 받아들이고 버리고 흘려보내라.
200의 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눈치라도 채라.
할 수 있는 일 중 꼭 해야 하는 일에만 관여해라.
나머지는 자동항법장치를 해서 그 흐름에 맡겨보자.
그렇게 하면 핸들이 아무렇게나 돌아갈 것 같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내 안의 2000이 살아난다.
200 대신 2000이 핸들을 잡는다.
전생정화를 하면
긴장되어 있던 혈과 세포들이 무장해제를 한다.
자유로워진 혈과 세포가 어디를 향하는지 아는가?
놀랍게도 하늘을 바라본다.
이들에게 하늘을 알아보는 지성이 있다.
우리 몸에서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부위가 머리라고 할 수 있다.
머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뇌 속 가장 깊은 중심부일 것이다.
그 곳에 송과체가 있다.
송과체는 인간을 우주와 하늘과 연결하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우주와 하늘을 알고 그 일원으로 연결하여 소통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의 인체는 말하고 있다. 이 해석이 무리인가?
이곳은 200이 너무 설치면 잠자는 상태가 된다.
200 대신 2000이 살아나 핸들을 잡으면 활성화되고 불이 들어온다.
명상이 가능해진다.
우주와 하늘과 연결되며 정보와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우리 몸은 혈과 세포, 모든 장기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우주와 하늘과 하나로 연결되어 돌아가도록 설계되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마음이 뺏긴 200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200이 중간에서 방해하지 말고
핸들을 놓아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좌표가 나온다.
하늘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이란
부처나 예수가 다가가고자 했던 궁극의 대상이다.
절대자이다. 하늘님이다.
바로 그 곳에 나의 본성, 나의 하늘이 있다.
하늘은 나를 너무나 잘 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속마음까지 나보다 더 나를 잘 안다.
수많은 생을 살아오며 한 나의 모든 행동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은 마음씀씀이까지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그러기에 하늘 앞에 가리거나 숨기거나 핑계대거나 변명할 필요가 없다.
떼를 쓰고 억지 부릴 대상이 아니다.
이 하늘이 내편 되는 삶을 살아라.
하늘 향해 마음 열고 하늘에 다가가는 삶을 살아라.
그렇게 하는 것이 순천하는 삶이고 나다운 삶이다.
하늘과 멀어지는 삶이 역천이고 나답지 않은 삶이다.
하늘을 거스르고 나답지 않는 삶을 살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늘이 좌표이고 그 곳으로 다가가는 삶이 길이다!
어떻게 하면 하늘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늘이 내 편 되어줄까?
①좋은 사람이 돼라.
나의 눈으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우주와 하늘의 눈으로 나를 봐라.
나의 성을 허물고 공동체에 이바지하며 덕을 쌓아라.
②하늘 방송국에 채널을 고정하고 자주 접속해라.
하늘과 친해져라. 하늘과 대화하고 치대라.
아는가? 하늘은 나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몇 천 년 전이나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외로울 때나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며 나를 짝사랑하였다는 것을.
아는가? 하늘은 내게 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나를 감싸고 있는 이 하늘과 우주는 허공이 아니다.
내 몸에 내 마음에 필요한, 금이나 은이나 보석보다 더 값진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몸 열고 마음 열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올 귀한 것들이
수 천 년 수 만 년 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언어를 배우지 못 했다.
하늘과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다.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익혀 나가면 된다.
대화하고 대화해라.
처음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으리라.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하라.
언젠가는 느낌으로 또 언젠가는 소리로 또 언젠가는 모습으로 하늘을 만날 수 있으리라.
이 부분이 어려우면 나와의 깊은 대화를 하라.
나와의 깊은 대화가 하늘과의 대화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우리들 마음속에 하늘마음이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하늘 쪽으로 좌표를 정하고
200이 놓고 놓아서 2000이 핸들을 잡는 자동항법장치를 가동해서 가더라도
중요한 갈림길을 만날 수 있다.
이때에 하늘과의 대화는 네비게이션 역할을 할 것이다.
③하늘 향해 간다고 해서 바람 없고 파도 없을까? 그게 어디 바다인가?
그저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여라.
그 것이 죽음일지라도.
정녕 가고자 하는 쪽이 길이라면
내 앞에 닥쳐오는 파도는 치러야 할 최소치일지 모른다.
1000만원 빚을 1만원에 퉁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좌표가 있고 네비게이션도 있다.
이제 200은 핸들을 최대한 놓아라.
내 안의 2000이 핸들을 잡는 자동항법장치를 가동하자.
그저 감사하며 2000이 2000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감상하자.
이렇게 하면
①마음이 편해진다.
바들바들 떨며 핸들을 잡았을 때를 떠올려 보라.
자유롭고 해방감을 느낀다.
②몸이 건강해진다.
몸은 마음의 거울이다. 마음이 편해지면 당연히 몸이 건강해진다.
뿐만 아니라 몸의 중요한 기능들은 2000의 영역이다.
2000이 활성화되니까 몸속의 중요한 기능들이 살아난다.
③일이 저절로 되어 진다.
꼬여있던 일들이 풀리고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길로 접어들었다는 의미이다.
길이니까 가시덤불이나 바위들이 적고 걸어가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다음은 2000의 역할이다.
2000은 200이 잠자는 동안에도 일을 한다.
2000이 살아나 왕성하게 활동하며 좋은 일을 만들기도 한다.
④행복감을 느낀다.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인가?
너무 못살게 굴지는 않는가?
귀하게 대하고 사랑하는가?
나에게 나는 천 년이고 만 년이고 함께 할 영원한 동반자이다.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하는가?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가?
자유로운 내 영혼을 얼마나 존중하는가?
나의 영과 혼, 온 몸의 세포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하늘을 닮은 나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이 세상에 달리 있는가?
200은 놓아라.
하늘을 알고 하늘을 향하는 내 안의 내가 살아나게 하라.
좌표를 확실하게 잡고 자동항법장치를 가동하며 네비게이션이 작동하게 하라.
그래서 내 안의 내가 항행하게 하라.
이것이 저절로 되어지는 삶이고
이것이 무위자연이며
이것이 도이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길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사는 삶이 도인의 삶이다.
그런데 200은 자기가 유일한 주인이고 대장이고 전부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다 해결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내 안에 참 괜찮은 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 안의 내가 살아나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자기가 전부라 생각하며
바들바들 떨며 잡고 있는 핸들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바람 불고 파도치는 2000의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잡고 있는 그 핸들을 제발 좀 놓아보자.
할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은
내려놓고 받아들이고 버리고 흘려보내라.
200의 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눈치라도 채라.
할 수 있는 일 중 꼭 해야 하는 일에만 관여해라.
나머지는 자동항법장치를 해서 그 흐름에 맡겨보자.
그렇게 하면 핸들이 아무렇게나 돌아갈 것 같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내 안의 2000이 살아난다.
200 대신 2000이 핸들을 잡는다.
전생정화를 하면
긴장되어 있던 혈과 세포들이 무장해제를 한다.
자유로워진 혈과 세포가 어디를 향하는지 아는가?
놀랍게도 하늘을 바라본다.
이들에게 하늘을 알아보는 지성이 있다.
우리 몸에서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부위가 머리라고 할 수 있다.
머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뇌 속 가장 깊은 중심부일 것이다.
그 곳에 송과체가 있다.
송과체는 인간을 우주와 하늘과 연결하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우주와 하늘을 알고 그 일원으로 연결하여 소통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의 인체는 말하고 있다. 이 해석이 무리인가?
이곳은 200이 너무 설치면 잠자는 상태가 된다.
200 대신 2000이 살아나 핸들을 잡으면 활성화되고 불이 들어온다.
명상이 가능해진다.
우주와 하늘과 연결되며 정보와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우리 몸은 혈과 세포, 모든 장기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우주와 하늘과 하나로 연결되어 돌아가도록 설계되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마음이 뺏긴 200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200이 중간에서 방해하지 말고
핸들을 놓아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좌표가 나온다.
하늘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이란
부처나 예수가 다가가고자 했던 궁극의 대상이다.
절대자이다. 하늘님이다.
바로 그 곳에 나의 본성, 나의 하늘이 있다.
하늘은 나를 너무나 잘 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속마음까지 나보다 더 나를 잘 안다.
수많은 생을 살아오며 한 나의 모든 행동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은 마음씀씀이까지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그러기에 하늘 앞에 가리거나 숨기거나 핑계대거나 변명할 필요가 없다.
떼를 쓰고 억지 부릴 대상이 아니다.
이 하늘이 내편 되는 삶을 살아라.
하늘 향해 마음 열고 하늘에 다가가는 삶을 살아라.
그렇게 하는 것이 순천하는 삶이고 나다운 삶이다.
하늘과 멀어지는 삶이 역천이고 나답지 않은 삶이다.
하늘을 거스르고 나답지 않는 삶을 살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늘이 좌표이고 그 곳으로 다가가는 삶이 길이다!
어떻게 하면 하늘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늘이 내 편 되어줄까?
①좋은 사람이 돼라.
나의 눈으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우주와 하늘의 눈으로 나를 봐라.
나의 성을 허물고 공동체에 이바지하며 덕을 쌓아라.
②하늘 방송국에 채널을 고정하고 자주 접속해라.
하늘과 친해져라. 하늘과 대화하고 치대라.
아는가? 하늘은 나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몇 천 년 전이나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외로울 때나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며 나를 짝사랑하였다는 것을.
아는가? 하늘은 내게 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나를 감싸고 있는 이 하늘과 우주는 허공이 아니다.
내 몸에 내 마음에 필요한, 금이나 은이나 보석보다 더 값진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몸 열고 마음 열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올 귀한 것들이
수 천 년 수 만 년 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언어를 배우지 못 했다.
하늘과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다.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익혀 나가면 된다.
대화하고 대화해라.
처음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으리라.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하라.
언젠가는 느낌으로 또 언젠가는 소리로 또 언젠가는 모습으로 하늘을 만날 수 있으리라.
이 부분이 어려우면 나와의 깊은 대화를 하라.
나와의 깊은 대화가 하늘과의 대화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우리들 마음속에 하늘마음이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하늘 쪽으로 좌표를 정하고
200이 놓고 놓아서 2000이 핸들을 잡는 자동항법장치를 가동해서 가더라도
중요한 갈림길을 만날 수 있다.
이때에 하늘과의 대화는 네비게이션 역할을 할 것이다.
③하늘 향해 간다고 해서 바람 없고 파도 없을까? 그게 어디 바다인가?
그저 감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여라.
그 것이 죽음일지라도.
정녕 가고자 하는 쪽이 길이라면
내 앞에 닥쳐오는 파도는 치러야 할 최소치일지 모른다.
1000만원 빚을 1만원에 퉁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좌표가 있고 네비게이션도 있다.
이제 200은 핸들을 최대한 놓아라.
내 안의 2000이 핸들을 잡는 자동항법장치를 가동하자.
그저 감사하며 2000이 2000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을 감상하자.
이렇게 하면
①마음이 편해진다.
바들바들 떨며 핸들을 잡았을 때를 떠올려 보라.
자유롭고 해방감을 느낀다.
②몸이 건강해진다.
몸은 마음의 거울이다. 마음이 편해지면 당연히 몸이 건강해진다.
뿐만 아니라 몸의 중요한 기능들은 2000의 영역이다.
2000이 활성화되니까 몸속의 중요한 기능들이 살아난다.
③일이 저절로 되어 진다.
꼬여있던 일들이 풀리고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길로 접어들었다는 의미이다.
길이니까 가시덤불이나 바위들이 적고 걸어가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다음은 2000의 역할이다.
2000은 200이 잠자는 동안에도 일을 한다.
2000이 살아나 왕성하게 활동하며 좋은 일을 만들기도 한다.
④행복감을 느낀다.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인가?
너무 못살게 굴지는 않는가?
귀하게 대하고 사랑하는가?
나에게 나는 천 년이고 만 년이고 함께 할 영원한 동반자이다.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하는가?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가?
자유로운 내 영혼을 얼마나 존중하는가?
나의 영과 혼, 온 몸의 세포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하늘을 닮은 나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이 세상에 달리 있는가?
200은 놓아라.
하늘을 알고 하늘을 향하는 내 안의 내가 살아나게 하라.
좌표를 확실하게 잡고 자동항법장치를 가동하며 네비게이션이 작동하게 하라.
그래서 내 안의 내가 항행하게 하라.
이것이 저절로 되어지는 삶이고
이것이 무위자연이며
이것이 도이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길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사는 삶이 도인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