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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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 때가 있으면
목욕탕에 가서 때를 불리고 벗겨내면 됩니다.
바깥의 때야 좀 안 벗겨도 더럽고 추잡하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갈 만합니다.
하지만 우리 몸속의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몸속의 피만 하더라도
맑은 피가 있고 그렇지 못한 피들도 많습니다.
기름이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엿처럼 진득한 피도 있습니다.
이런 피들이 돌아다니면서 곳곳에 지저분한 때를 끼게 합니다.
잘 흘러가야 오염된 것을 씻기고 영양분을 나르는데
흐르지 못해 고이고 막히면서 갈수록 오염이 심해집니다.
우리 몸속의 흐름이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할 때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누적되다가 염증이 되고
더 심해지면 최종에는 암이 되기도 합니다.
바깥의 때야 더럽고 냄새나는 것으로 끝이지만
몸속의 때들은 오랫동안 방치하면
나중에 아프고 고통스러운 병을 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몸속의 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병원에서 몸속의 때를 벗겨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도 안에서 아직까지 그런 병원은 없습니다.
그냥 둔다면 계속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의 혈액이 개울물 흐르듯이 잘 흘러가면
때가 쉬이 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잘 흐르지 못하거나 힘이 약해 정체되면
서서히 고이게 되고 때가 끼게 됩니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피지만
그 이면에는 그 피를 흐르게 하는 더 큰 힘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라고 하며
그 기의 운용에 따라 피의 흐름이 달라집니다.
이 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양의 쪽에서는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를 실제로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명백한데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니,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기가 잘 돌지 못하면 피도 잘 흘러가지 못합니다.
잘 흐르지 못하면, 막히고 고이고 누적되어 썩게 됩니다.
이것이 몸속의 때입니다.
몸속의 때를 벗겨주는 곳은 제도적으로 아직 없습니다.
하늘동그라미의 기통은
몸속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기가 잘 흘러가도록 해줍니다.
기가 잘 흘러가면 피도 잘 흘러갑니다.
기혈이 잘 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 몸속에 낀 때들이 씻겨 나갑니다.
이 방법 이외에 몸속의 때를 벗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혹시나 있다면 아이디어를 내서
특허 내고 장사를 해도 대박이 날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늘동그라미에서 전생정화를 하는 것도
결국은 몸속의 때를 벗겨내는 일환으로
기통까지 하면 기운이 쫙쫙 잘 흘러가게 하고
세차게 흘러가도록 힘이 실리게 됩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잘 흐르면 그 때들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속의 때가 끼이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마음의 때가 문제이며 원인입니다.
그 근본을 찾아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혼자서는 힘드니 이곳에서 도와드립니다.
마음의 때가 많으면
몸속의 때도 많아집니다.
몸속의 때를 벗길 수 있는 방법은 기혈이 순환되어야 하며
근본적으로는 마음의 때를 벗겨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늘동그라미는 어떻게 보면
몸속의 때를 벗겨내는 사우나 겸 목욕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네 번째 강의는 어떻게 가야 하나라는 문제입니다.
도인의 삶은 이 문제를 가장 잘 풀어낸 글입니다.
답답하고 힘들 때 한 번씩 아침저녁으로 읽어보세요.
우리의 지금 세상살이는 참 만만치 않습니다.
사업하다 어려움에 부닥쳐서 답답하기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여기를 계속 다녀야 하나, 왜 내가 여기를 다니지, 갈등하며
구속되고 억눌린 삶을 많은 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삶이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 드나들고
병실에 갇혀있게 되면
상당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과 불안감이 엄습하고
지속적인 약값에 수술비, 입원비 등 비용 부담에 갈수록 힘들어집니다.
의사나 간호사들도 그리 친절하지 않아
심적으로 더 힘들게 됩니다.
세상을 살면서 좋은 날도 있지만
이렇게 막막한 상황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황망해집니다.
망망대해나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느낌입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를 때
어느 쪽으로 가야 살아날 수 있을지 답답할 때
우리는 정확한 좌표를 정해서
살아날 길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 좌표는 바로 하늘!
하늘입니다.
전생정화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은 몸과 마음 모두 많이 긴장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과 몸의 때가 많이 낀 채로 살아갑니다.
짐을 가득 지고
무엇을 지키고자 애쓰는 보초병처럼.
세포들을 살펴보면 갑옷 입고, 투구 쓰고, 창 들고, 방패 들고,
누군가를 경계하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마음의 짐들과 때를 덜어주는 것이 전생정화이고
이렇게 덜어주면 세포들이 긴장이 풀려 무장해제를 합니다.
그제서야 세포들이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로워진 세포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일정합니다.
바로 하늘입니다.
굉장히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몸의 80조나 되는 작은 세포들이 일제히 하늘을 본다는 것이!
하늘을 본다는 것은 하늘을 알아보는 지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작은 단위가!
너무도 놀랍습니다!
우리 새싹회에는
이런 세포 같은 것들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보입니다.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몸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하늘을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세포들이 구성하고 있는 장기들은 하늘을 알까요?
당연히 압니다.
대화도 가능합니다.
그들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의사소통도 가능하고 대화도 가능합니다.
간하고 대화하고
심장하고도 대화가 가능합니다.
콩팥도, 몸 각 부위별로 대화가 가능합니다.
수없이 많은 세포들로 구성된 장기들이
하늘을 모른다면 이상하죠.
육체가 왜곡되지 않고 긴장이 풀리면,
내 몸은 하늘을 향합니다.
나의 육체를 구성하는 유형의 백은 확실히 하늘을 향해있고
나의 혼도 하늘을 알고 있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본성인 영은 하늘의 분신이니
유형의 백과 혼과 영은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늘을 향해있다는 것은 하늘을 닮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상계에 노출된 무형의 백에 해당하는 200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나를 이루는 것이 200이 전부가 아닌데
오직 200만이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 모릅니다.
하늘을 향해야 하는 정확한 근거가 있는데도
200은 좌표가 하늘인 줄 모르고
밀림 속을 정처 없이 헤매다닙니다.
우리가 하늘을 좌표로 삼더라도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가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밀림 속이라면 늪도 있을 테고, 가시덤불도 있을 수 있고,
벼랑이나 절벽, 급류나 맹수나 독사 같은 것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지도나 안내서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없이 가야 한다면
어떻게 가야 하는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기본 밑그림을 그려옵니다.
그런 밑그림을 200은 볼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볼 능력이 없습니다.
이런 200이 우리의 삶을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길을 볼 수 없으니 장님 상태이고
이 상태로 자기가 운전을 하니
밀림 속에 들어가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장님의 200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카페 체험담에 보면
200의 눈으로 볼 때 기적 같은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200의 입장에서 볼 때 기적이지
그 이상의 눈으로 볼 때는 당연합니다.
내 안에는 200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내 안에 200보다 참 괜찮은 내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200은 장님 상태에서 핸들을 잡아 운전하지 말고 놓아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
할 수 없는 일,
해서 안 되는 일,
이런 것들은 놓아버리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오랜 습으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고 놓아버리는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습니다.
핸들을 놓으면 큰일 날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200을 놓아버린다는 것이
삶을 놓고 막 살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좀 더 잘살자는 의미입니다.
200이 핸들을 놓으면
배가 뒤집혀버리고,
삶이 거꾸로 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내 안에 열 배, 백배 더 똑똑하고 괜찮은 내가 핸들을 잡으면
삶은 더 편안해지고 행복해집니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하늘이나 신이 어떻게 해준다는 의미가 아니고
내 안의 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200을 놓아버리고
내 안의 2000, 20000이 살아나서 핸들을 대신 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200의 입장에서 볼 때
저절로 되어지는 삶이고,
의도하지 않아도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삶이며,
자동항법장치처럼 안전하고 편안하게 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자동항법장치를 달아서 200이 최대한 핸들을 놓게 하자.
가는 길 고비고비 장애나 애로가 있을지라도
결국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하늘이니
하늘에 물어가면서
대화하면서
그렇게 내비게이션을 작동시켜 제대로 가자 이 말입니다.
삶이 망망대해나 밀림 속처럼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를 때
200은 최대한 놓아버리고
내 안의 참 괜찮은 나에게 핸들을 잡게 하고
하늘과 친해지는 삶을 살아가세요.
하늘을 닮은 삶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200의 삶보다
훨씬 잘 사는 삶이며
잘 살아갈 수 있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길입니다.
너무 아프거나 힘이 든다는 것은
심하게 길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을 여행길이라고 친다면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이 여행길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돌아다니기 싫어서 숨어지낸다 해도
시공간의 여행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습니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변해가며
그에 따라 나도 매일이 변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수많은 변수들의 작용으로 인해
잘 나가던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살만하다고 여겼던 삶에 고난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가 괜찮다고 해서
계속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났다고 행복해하던 순간이
과거에 쌓았던 어떤 험난한 채널의 발현으로
전쟁 같은 삶으로 변하는 것을 자주 봐 왔을 것입니다.
설레임과 사랑으로 맞이했던 자식이
키우다 보면 웬수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생에 자식과 나와 얽힌 좋지 않은 인연에 의한
나쁜 기억들이 현실에서 재생되어 서로를 괴롭힙니다.
평지인 줄 알았던 삶이
한순간에 지뢰가 터져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립니다.
실례를 들자면
50대 건장한 사람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팔뚝에 금이 갔는데
그 순간이 전생에 정신대 끌려가기 싫어
몸부림치다가 팔에 금이 갔었던 기억과 맞물려버렸습니다.
정신대에 끌려가서 죽기를 열망했던 마음 상태와 채널이 딱 맞아
몸이 그것을 알아들어 버렸습니다.
병원에서 재생불량성빈혈로 진단받게 되어버린 거죠.
건강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길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제대로 길을 간다면
내가 원하지 않은 일들이 덜 일어납니다.
하늘에 좌표를 잡고,
200을 최대한 놓아서,
내 안의 내가 살아나게 해서 핸들을 잡아
하늘을 닮아가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삶을 살아가면,
우연히 만나는 이가
나한테는 아주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 확률이 높아지고,
배우자를 만나도
참 괜찮은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며,
자식을 만나도
골라서 데리고 와도 힘들 정도의
소중하고 귀한 자식이 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뜻밖의 좋은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것이 바로 길이기 때문입니다.
도인의 삶을 힘들고 답답할 때
아침저녁으로 읽어보세요.
읽어보면서 실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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