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1차 전생정화
본문
◐ 경쟁 - 높이~ 더 높이~, 올라가야 해 ◑
뒤돌아보니 27살 아들의 짧은 인생이 버겁습니다.
수많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양제 한웅쿰과 한약으로
버티어내는 아들을 한몸이 되어 매니저처럼 돌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성적과 수상으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아들은 초등학교 때 부터, 대치동 목동학원으로 가는 차안에서
밥을 먹고, 쪽잠을 자고, 주말에는 영재원으로, 방학에는
과학대회 준비로 실험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쉴틈없이
달려야 했습니다.
반항도 사춘기도 없이 묵묵히 잘 버텨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한웅쿰의 영양제를 먹으며 대학원 실험실에서
주말도 없이 인류를 위한 약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동안 쌓여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저항감으로
처음으로 반항했습니다.
금전적으로 여유있는 지원과 왕복 3시간 거리에 지쳐
학교앞으로 독립을 요구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공부를
그만두고 취업준비를 하겠다며 맞섰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전생정화를 신청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 화택 ◑
아들의 간은 분노로 폭발하고 있고 불에 타고 있답니다.
아들이 1%안에 들기를 바라는 남편은 저를 닥달했습니다.
그때마다 어린 아들은 바늘방석이 되어 안절부절하였고
엄마에게 의지했습니다.
전생에도 아버지와 아들이었으며 아버지의 호령 속에
유모인 저에게 의지하였었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능력이 있음에도 돈에 인색해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느날 한숨을 쉬며 말하더군요.
'물물교환이나 하고 살지 화폐는 왜 만들어가지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언제부터인가 아들이 대신 엄마를
옹호하기 시작했고 엄마 대신 아버지에게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분노에 쌓여 있는 엄마는
아들에게 화를 대물림 하고 있었나봅니다.
결국 아들에게 화의 씨앗을 심어주었습니다.
아들을 방패막이로 이용하고 있었음을,
엄마의 인생을 아들의 어깨에 짊어지게 했음을
가슴 아프게 느끼며 엄마가 화를 풀면 아들도
화가 풀리는 것 이었음을 알아차립니다.
남편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저에게
"어차피 1년 뒤 풀건데, 지금 풀면 더 좋잖아요."
빙그레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기억하며 수행하겠습니다.
엄마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하는지, 내려놓아야하는지
조언해 주신 도까비 지원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전생정화 후 ◑
전생정화를 신청한 후, 아들의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며
얼굴에 가득했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도 사라지고
거짓말 처럼 편안해 졌습니다.
본인도 아버지와 협상 중으로 아직 대답을 받지 못한
상태인데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졌지 의아해합니다.
그래서 전생정화를 신청했음을 알려주었고 신기해합니다.
통학거리가 너무 멀어 힘들어했었는데 원하던 대로
학교 앞으로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대응하는 것도 감정을 섞지 않고 잘 타협합니다.
이사하는 날, 아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지금은 아주 잘잘잘~지냅니다.
자신에게 잘해주며 자신을 위해 살면서
박사 과정을 끝까지 마쳐 인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큰선생님, 빙그레선생님, 도까비 지원장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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