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미아리고개
작성자 1271호 서목련 (대구1/구미)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0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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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늘동그라미 대구1지원 서목련입니다.

작년 8월 말 기통 이후 ‘잘 되고 있어’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빙그레샘이 강의 중 기통 후에 감정쓰레기들이 올라와서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힘든 정화과정을 겪을 수 있다고 했는데, 제겐 해당이 없길래 좋아라하고만 있었지요.


그런데, 올해 2월 중순부터 3월 초 기간에 10년 동안 받음직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스며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아니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자고 났더니 갑자기 소리가 잘 안 들리고,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음성을 변조한 소리처럼 들리고, 소리가 귀를 때려 귀가 너무 아팠습니다.

핸드폰 통화도 최대음량으로 스피커폰을 사용해야만 통화가 가능할 정도. 소리는 들리나 무슨 말인지 소리들이 웅성웅성거려 정신이 없었습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니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병원에서 “돌발성 특발성 청력소실"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왼쪽 귀는 정상의 60%, 오른쪽 귀는 40% 정도밖에 들리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이 과정이 전생정화로 나오는 것들임을 까마득히 잊은 채

‘이대로 영영 듣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나를 이렇게 만든 너도 댓가를 치뤄야지’

현실적인 두려움과 함께, 원인을 제공한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깊은 슬픔까지 더해지면서 감정에 완전히 빠져버렸고, 결국 일주일 사이에 직장을 쉬어야 할 정도로 무너져버렸습니다. 분노가 하늘까지 다다를 정도였고, 나를 이렇게 망가뜨린 사람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도 치솟았습니다.

병원도 다니고, 한의원도 가봤지만, 제 몸과 마음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 생각나는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구1지원 장이신 우리 행복해지원장님께 제 증상을 말씀드렸습니다. 지원에 비상이 걸렸고, 지원 소속 모든 기공유명상에 저를 포함시켜 기공유를 계속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명상을 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내 감정’이었습니다.

그동안 밖으로 향해 있던 분노가 사실은 내 안 깊숙이 쌓여 있던 감정의 찌꺼기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놀랍게도, 그 분노는 점점 형태를 바꾸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의문이 “지금까지 큰 불편 없이 잘 살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구나”라는 깨달음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명상 중 갑자기 픽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기폭제역할을 한 그분은 갑질을 한 게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귀인이었구나. 그 분에 대한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왔습니다.

분노의 마음이 가라앉자, 신기하게도 소리도 좀 더 잘 들리는 듯하고, 몸도 조금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단장의 미아리고개”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이 노래는 예전부터 부르기만 하면 그렇게 슬픔이 올라오는 노래였습니다. 그 날도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장면과 슬픔이 함께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슬픔은 점점 커져서, 가슴이 너무나 아팠고, 결국 눈물이 명상내내 멈추지 않을 정도로 쏟아졌습니다.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 순간,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소녀가 엄마의 손을 잡고 피난을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소녀는 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있었고, 곧 엄청난 폭격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너무나도 크고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그 공포 속에서, 소녀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이렇게 죽은 적이 있구나.

저 소녀를 저 곳에서 데리고 와야겠구나.

소녀에게 말을 했습니다.

“서목련, 비행기가 폭격을 가할 때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웠니? 가족들과 생이별해서 얼마나 슬펐어? 그 두려움 속, 슬픔 속에 있는 너를 지금까지 모른 척해서 너무나 미안해, 진짜 미안해, 나도 몰랐어. 이제 알게 되었어. 더 이상 너를 이렇게 방치하지 않을게.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가 절로 나왔습니다.

이제 그만 두려워하고, 슬퍼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우리나라 전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야. 다시는 이런 일 겪지 않을 거야. 다 지나간 일이고, 그러니 이제 나랑 함께 저 밝은 세상으로 나가자. 항상 함께 할게” 하면서 제가 저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또한 “아… 그래서 내가 소리에 그렇게 예민했구나.”

가스레인지 불을 켤 때 나는 소리조차 무서워 피했던 순간들,

누군가 큰 소리를 내면 이유 없이 놀라고 얼어붙던 나의 반응들이

조금은 이해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실제인지, 단지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내 안에 있던 깊은 감정이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60년 동안 당연하게 잘 듣고 살아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오감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감정을 붙잡고 있을 때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 감정을 이해하고 놓게 되니 마음이 놀랄 만큼 고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어떤 이유로 다시 듣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것 또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마음이었습니다.

이후로도 연이어 명상을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앉으면, 눈물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보름동안 지속된 거 같습니다. 이 시간들은 켜켜이 쌓아 놓은 마음속 깊이 숨겨 놓은 감정정화의 시간들이 었음은 틀림이 없고요.


이 시간들은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완전히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명도 여전히 들리고, 귀의 상태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입니다.

No Problem.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처럼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있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니 감사가 절로 입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경험은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바라보는 내 안에 달려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선을 바꾸는 순간, 삶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는 것을요.

두려움이 사라지니, 오히려 삶을 대하는 배짱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지금 저는, 이 모든 과정을 겪게 해준 상황과 사람들, 그리고 저 자신에게 깊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잘 안내해 주시는 우리 대구1지원 지원장님,

밥도 못 먹고 힘들어할 때 맛있는 비빔국수로 기운을 채워 주신 우리 덕분님, 그 맛은 영영 잊지 못합니더.

저를 성장시키기 위해 온 우주가 동원되었습니다.

모든 존재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기특한 나,

하늘님,

큰선생님,

빙그레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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