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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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림으로 카페에 가입한지 1년도 더 지난 후에야
새싹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내면과 외면의 복잡함이 정리될듯 하다가도 더욱 고된 상황이 지속되어 전생정화까지 이끌어졌던 듯 합니다.이 사연에 대해서도 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늘은 엄마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 전생정화 이후에도 내외면에서 강한 무언가가 일어나곤 했습니다. 명상에서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어머니의 전생정화를 신청했습니다.
줌에서 전생의 사연을 듣고 그럴만 했음에 대해 내가 이해하라는 큰선생님 말씀이 온전히 다 와닿지는 않았지만 엄마께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계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고 더 내맡기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했습니다.
지난 6월 기통이 되었고 얼마 뒤 7월에 외할머니께서 폐가 거의 녹아내리고 위급한 상황이라는 소식에 다급한 마음에 기공유 부탁을 드렸는데, 큰 위기를 넘기시고 잠시 마지막 시간을 자녀들과 함께하신 듯 합니다.
오랜만에 덕산 분원에 방문했던 8월 그 다음 주말에 빛이 되셨습니다. 카페에 도움 요청했을 때 기꺼이 기공유 해주시고 함께 기도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함께해 주신 분들을 초청하여 감사의 기공유를 드렸습니다. 전생정화를 신청해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에 남지만.. 그때 기공유 많이 해드린 것이 그나마 감사한 마음입니다.
외할머니 장례 중 이모께서 엄마가 전보다 안색도 좋아 보이고, 걷는 것이나 몸을 쓰는게 전보다 좋아 보인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엄마께서는 제가 초등학생 때 쓰러지신 적이 있는데 그때 소아당뇨 판정을 받고 치아가 다 무너져 내리며 지금까지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무언가를 드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류머티즘이 발병된 것도 14년 전쯤입니다. 스스로 화장실 문을 열기 어렵고, 걷기 어려우신, 손발이 거대하게 붓고 약물끼리 충돌을 일으키며 여러 깊은 고통을 체험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게 많이 힘들었습니다. 쓰러지셨다고 연락이 오면 하던 일은 다 뒤로 하고 눈물바람으로 집에 달려가야만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물론 덕분에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큰선생님을 만났다면 좋았겠지만(이것때문에 가입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인연에도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지난번 이야기 보따리 때 류머티즘 약 드시지 않게 되었다는 선생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장례식장에서, 차례를 지낼 때에도 바닥에 내려갔다가 일어설 때 혼자 일어나시기가 어려워 부축을 받으셔야 하긴 하지만
제가 관찰했을 때에는 근래에 머리 숱도 더 많아지시고 (본인은 의식을 잘 못하시는 것 같지만) 감기를 세게 앓은 덕에 살도 빠지시고.. 장례식장 절차 중 이야기를 나누며 .. 그래도 요즘 좋다는 말씀이 받아들여집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저희를 낳고 엄마가 먼저 돌아가시지는 않을까 외할머니께서 늘 걱정하셨고 외가 식구들도 늘 염려하는데 지금껏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니 감사한 일입니다.
엄마가 다른 도반님들처럼, 또래 아주머니들처럼.. 자신의 인생을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들 같은 것들이 종종 올라왔지만.. 엄마께서 지금 너무 좋다고 하시고 잘 지낸다고 하시니 저는 그저 감사하게 받아들여야겠지요.
이제 저도 더욱 가볍게 살 일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함을 담아 글을 쓰는데 조금 무겁게 썼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ㅎㅎ 아니에요. 글 한번 날리고 다시 쓰려니 그런가 싶기도 하네요 ^^;
천태극 안에서 비행기 타고 가는 여정이 재미있어요. 큰선생님, 빙그레 선생님, 지원장님, 부지원장님과 도반분들 감사드립니다. 하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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