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통! 그리고 1년 5개월] -창작동화: 미꾸의 눈물-
작성자 36호 혜인(원지/원지)   댓글 2건 조회 184회 작성일 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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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8일, 제 36호로 기통이 된 후, 1년 하고도 5개월이 흘렀습니다.
그간의 일들을 한 편의 동화로 풀어 보았습니다.
창작활동을 꽤 쉬었던 터라 뒷심이 달리네요.

못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작동화: 미꾸의 눈물
                                      최혜인(원지지원)
 
 
미꾸는 넓지 않은 네모난 공간에서 어마하게 많은 친구들과 살았어요. 물론 엄마, 아빠, 형제들도 있었죠.
아빠는 미꾸를 아주 예뻐했어요.
영리하고 유연한 몸매를 가졌다며 늘 칭찬했죠.
“맞아요. 전 저 아이들과 다르죠.”그날도 먹이를 향해 달려들어 주둥이를 처박는 친구들을 보며 미꾸는 진저리를 쳤어요.
“아빠, 난 떠나겠어요.”
마침 먹이를 먹고선 부른 배를 흔들며 다가온 아빠에게 말했어요.
“어디로 떠난다는 거냐? 여긴 니가 살 곳이야.”
“아뇨. 난 저 못난이들처럼 살 수 없어요. 저렇게 처먹어 봐야 어차피 잡혀가 죽을 거잖아요. 삶이란 이런 게 아니라구요.”
미꾸는 아주 멋진 삶을 상상했어요.
“미꾸야, 그래봐야 너도 미꾸라지란다. 잘나고 못나고가 어딨니?”
“아니예요. 난 달라요. 난 쟤들처럼 천박하지 않아요.”
안타깝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뒤로 커다란 뜰채가 다가오는 게 보였어요. 미꾸는 빠르게 몸을 움직여 뜰채로부터 멀어지며 소리쳤어요.
“아빠! 어서 와요.”
한 바탕 소란이 지나고 잔잔해지자 미꾸는 아빠에게 말했어요.
“보라니까요? 난 다 안다구요. 언제 뜰 채가 올지도 말이예요. 둔해 빠져서는 등신처럼 잡혀가는 저애들이랑 내가 같다구요?”
그리곤 부드럽게 유영하며 빠져나올 구멍을 찾았죠. 멀리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버지를 등지고 말이예요.
이 더럽고 어두운 곳을 떠나면 멋진 수초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그곳엔 고급스러운 먹이도 많을 테죠. 그뿐 아니예요. 빛나는 자신을 알아주는 누군가도 있을 거예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도착한 곳은 어느 공원의 연못이었어요.
연못에는 정말 멋진 아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연잎이 동글동글 떠 있는 수면 위로는 사람들이 던져준 먹이들이 차고 넘쳤죠.
“어? 누구?”
연잎 위에 앉아 있던 청개구리가 물었습니다.
“눈도 없니? 난 미꾸라지 중에서 제일 예쁘고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라구. 너 같은 조무래기랑은 안 놀아.”
청개구리를 등지고 돌아섰을 때였습니다.
저만치 유영하고 있는 커다란 잉어가 보였습니다. 통통하고 빛나는 황금빛 비늘을 가졌는데 한 눈에도 위엄이 느껴졌어요.
“어머나!”미꾸는 가슴이 마구 뛰었죠. 자기가 그리던 딱 그대로의 이상형이었거든요.
“이 연못의 대장이 분명해.”
미꾸는 잉어를 ‘황금빛’이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황금빛의 주변에는 크고 작은 잉어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미꾸는 잔뜩 경계하며 황금빛을 향해 다가갔어요. 황금빛에게 어떻게 해야 잘 보일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요.
“어이? 거기!”
살금살금 시선을 끌며 다가가자 황금빛이 불렀습니다.
“저…요?”
미꾸는 눈꺼풀을 살짝 내리깔며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그래, 가만 보니 꽤 귀여운데 나랑 사귈래?”
미꾸는 뛸 듯 기뻤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보여선 안 돼요. 최대한 고급스럽지만 귀여운 몸짓으로 뽐을 내야 해요.
미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매력을 뿜어냈습니다.
물을 먹을 때는 작은 입을 뽀끔거려 더 귀엽게 보이도록 노력하였고, 춤을 출 때는 매끄러운 피부가 더욱 돋보이게 파다닥거리기를 반복하였죠. 그리곤 황금빛의 비늘사이에 낀 오물을 쪼아서 더 빛나는 황금비늘을 만들어 주기도 했어요.
“이런! 너란 앤 대체 어딨다 이제 온 거야?”
미꾸의 매력에 마음을 담뿍 빼앗긴 황금빛이 미꾸를 데리고 집으로 갔어요. 그리고 사랑을 해 주었어요.
“역시, 난 똑똑해.”
지금도 이리저리 떼로 몰려다니며 천박하게 먹이 투쟁을 하다가 뜰채에 뜨여져 어디론가 실려갈 고향친구들을 떠나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미꾸는 그들과 다른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어요.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는 없었죠.
 
이상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황금빛이 달라져 갔어요. 집을 비운 채 혼자 두는 시간이 많아졌고, 때로는 가끔 비틀거리며 딴 물고기를 데려 오기도 했죠. 심지어 연잎 위에 앉은 청개구리에게 사랑스런 눈빛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미꾸는 빈방에 홀로 남아 눈물지었어요.
“얘들아, 황금빛이 변했어. 어떻게 저럴 수 있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어느날, 다른 잉어들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너 바보구나. 사랑은 원래 변하는 거야.”
차가운 표정으로 비웃다가 멀어지는 잉어를 바라보는 미꾸의 마음은 허망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지? 난 황금빛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 걸.”
미꾸는 연못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황금빛을 청개구리에게 빼앗기고서도 그곳에서 살 순 없었습니다.
 
연못을 떠나온 미꾸는 또 다른 연못을 찾아갔고 그곳에서도 가장 힘센 존재를 찾아 그의 마음을 샀습니다.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사랑은 진짜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꾸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이어지는 만남과 이별은 이제 누군가를 사랑할 한 조각의 따듯함도 남기지 않았죠.
“이젠 사랑 따위 안 해. 그 누구를 위해 내 마음을 주는 일 따윈 없다구.”
심신은 지칠대로 지쳤고 가슴엔 냉기만이 가득했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라면 품어 안아 줄 것 같았어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거친 도랑을 거슬러 가다 지쳐서 쓰러지기 일쑤였죠.
그러다 다시 힘을 내어 지느러미를 흔들어 보아도 고향은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가야해. 가서 함께 어울려 살 거야.”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미꾸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빠는 보이지 않았고 낯익은 친구들도 몇 남지 않았습니다.
슬펐지만 우선은 친구들과 가까워져야 했어요.
“안녕? 나 미꾸. 이제 너희들이랑 같이 살려고 왔어. 오랜만이야.”
하지만 미꾸를 본 친구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멀어져갔습니다.
“얘! 왜 가니? 나랑 같이 놀자 응?”
하지만 한 마리, 두 마리 자꾸만 멀어져 갔고 미꾸는 끝내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다들 너무해!”
억울했지만 표를 낼 순 없었습니다.
내가 오니까 부러워서 그럴 거야. 곧 나의 연못생활이 궁금해서 모여들 걸?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미꾸는 외로워 죽을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때였습니다.
허공 높은 곳에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미꾸야, 그건 니가 자초한 상황이란다.”
“내가…요?”
“그래, 넌 다른 미꾸라지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니?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래? 그럼 혼자서 살아야지 그렇게 외로워해서야 되겠니?”
“싫어요! 싫단 말이예요.”
그 순간, 기다란 호스가 쑥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 둘, 셋….
뻥, 뚫린 흡입구를 단 호스가 수도 없이 들어오더니 쫙쫙 물을 빨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어, 어?”
미꾸는 파닥거리며 웅덩이 가운데로 헤엄쳐갔습니다.
“왜 이러죠? 내가 뭘 잘못했다고 생명수를 빼가는 거예요?”
다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넌 머리좋고 영리하니까 물이 조금만 있어도 살 수 있지 않겠니?”
그러는 사이 웅덩이는 자꾸만 바닥을 드러내고 물은 가운데로, 가운데로 좁혀져만 갔습니다.
“하지 마! 하지 말라니까! 무섭단 말이에요.”
미꾸는 있는 힘을 다해 물이 남은 가운데로 헤엄쳐갔습니다.
그래봐야 호스는 커다란 입을 벌려 자꾸만 물을 빨아들였습니다.
 
이제 웅덩이는 시커멓게 바닥이 드러났고 물은 한 종지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종지같은 물속에서 미꾸는 파닥거렸습니다.
파닥거릴수록 물은 조금씩 더 줄어들었습니다.
“이러지 마. 나 죽을 것만 같아.”
그래도 물은 야속히도 점점 줄어들었고 줄어드는 만큼 등쪽이 수면밖으로 떠올랐습니다. 설상가상 햇볕까지 뜨겁게 내리쬐기 시작했지요.
피부가 바짝바짝 타들어갔습니다.
살아야했습니다. 살아서 아빠를 만나야 했습니다. 만나서 잘못했다고, 아빠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일 뿐, 물은 더욱 줄어들어 이젠 파닥거릴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 다 내려놓자. 내려놓고 하늘에 맡기는 거야.”
미꾸는 퍼덕임을 멈추고 눈을 감았습니다.
편안했습니다.
“미꾸야… 보이느냐?”
먼 데서 아빠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빠….”
“그래. 이제 니가 뭘 잘못했는지 알겠니?”
“네, 아빠.”희미하게 눈을 뜨자 파랗게 펼쳐진 하늘이 보였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 외롭게 떠 있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섬처럼 외롭게 떠서는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저예요, 참 못난 미꾸예요.”
미꾸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잘 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냥 미꾸라지로 태어나 하늘이 허락한 시간을 살다가 간 친구들이 훨씬 훌륭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산 후, 누군가의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되어간 친구들이 더 성스러웠습니다.
부드러운 피부도, 유연한 춤동작도 충분한 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뭔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누구도 잘나고 못난 것이 없으며 귀하고 천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도 배경이 되어 주는 존재가 있을 때라야 빛을 발하는 것을.
그러자 눈물이 더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막힐 듯 가쁘던 숨이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타들어가듯 따갑던 피부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미꾸는 눈을 뜨고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자기 눈에서 나온 눈물이 종지만한 웅덩이를 대접만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진한 반성끝에 흘린 자신의 눈물이 자신을 살린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또 한 번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미꾸의 몸은 더욱 자유로워졌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때 하늘 높은 곳에서 아빠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미꾸! 미안해. 외로웠지? 이제 괜찮아.”
미꾸는 지느러미를 활짝 펴고 유영을 시작하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예요 아빠! 이 모든 게 하늘님의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걸요."
그러자 호스들이 일제히 물을 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맑고 깨끗한 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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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님의 댓글

2호 빙그레 작성일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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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님의 댓글의 댓글

36호 혜인 ( 원지/원지 ) 작성일

선생님의 사랑과 은혜가 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