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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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댓글 0건 조회 40회 작성일 202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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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자신을 참 모릅니다.
그래서 몇가지 각도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사람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육체는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몸이고
정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에서 존재합니다.
육체를 형태가 있는 유형이 백이라고 한다면
정신은 형태가 없는 무형의 백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혼백이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백이 존재하면 혼도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하면 죽고 난 뒤에 생기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혼이 있습니다.
백 속에 알맹이처럼 혼이 존재하고
더 정확히 말하면 점처럼 존재합니다.
동약의학에서는 혼이 간 속에 들어있다고 합니다.
명상으로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육체와 정신과 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입니다.
우리 안에 알맹이 형태로 존재하고
육신의 대표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짐승들에게도 있습니다.
정신이 없다면 사람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고 막 짓어대고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짐승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영입니다.

영이란
하늘님이 인간에게만 준 특별한 것으로
자기의 분신을 국화빵 찍어내듯이 찍어서 사람에게만 준 것입니다.
사람의 역할을 충실히 하라고.
깊은 명상에 들어가면 명백하게 보입니다.

살아있을 때 내 주변으로 공기처럼 돔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 아득히 먼 하늘에 존재하면서도
내 곁에, 내 주위에 늘 같이 있습니다.
하지만 차원이 다르게 존재합니다.

우리의 존재는 다차원의 존재입니다.
혼백할 때 백보다는 혼이 더 중요하고
영혼할 때는 혼보다 영이 더 중요합니다.
그 영이 나의 존재적인 측면에서 대표선수입니다.
하늘님의 분신이고
나의 대표선수이며
나의 본성입니다.

그 영이 나의 원 뿌리이고
내 속에 깃들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는 곧 하늘같은 존재입니다.

죽음이란 백 속에 들어있던 혼이
한 생을 살고 마무리하고 다음 생을 준비하기 위해 영을 만나러 가는 과정입니다.
다음 생을 짜기 위해 영을 만나서
지난 생을 되돌아보고
잘한 것과 못한 것, 부족한 것들 살펴서
부족한 것을 채우고 보정하기 위한 설계를 합니다.
이런 밑그림을 그리러 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밑그림이 완성되면 대기하다가 적합한 장소가 나오면 바로 환생합니다.

우리나라는 족보나 성씨를 굉장히 중요시 하는데
실제로 그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남자가 되기도 하고
김씨가 이씨가 되기도 하고
박씨가 최씨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 하는 과정이 윤회,
다시 태어남을 환생이라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얼마나 거쳤을까요?
새싹회에서는 만년을 이야기하는데
현생의 문제의 뿌리를 찾아 전생을 보게되면
몇 백년에서 몇 천년 또는 만년 가까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현재의 영향을 주는 과거의 생을 들여다보면
보통 만년을 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만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만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문제가 없었을까요?
여러 가지 애로사항도 있었을 겁니다.

죽어서 영을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도
제대로 가지 못해 낙제생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혼이 영을 만나러 가는데
보통 우주선의 3단 분리를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처음에 막 죽었을 때
혼은 어리둥절합니다.
그러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고 몇 십년 동안 밭일을 다니는 할매를 본 적도 있습니다.
죽어서도 자신을 벌 주는 것이죠.

하지만 보통은 알아차리고
홀가분함을 느낍니다.
병으로 오래 고생했던 사람들이나
삶이 아주 고달팠던 사람들은
죽고나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이 시원해합니다.
이렇게 편한데 왜 안죽으려고 애를 썼나 싶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100% 맥주라 표현한다면
막 죽고나면 맥주 맛이 살짝 빠져 7 ~80%정도 됩니다.
죽으면 육신을 벗어난 상태이므로
살아있을 때 육신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는데
전생 관계나 귀신들이 보입니다.
무당 안에 깃든 것이 혼이 아니라 만신이라든지
만신이 사람보다 등급이 낮다든지 하는.

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사람들이 앞 날이 답답할 때 만신을 찾아가는데
혼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보다 훨씬 등급이 낮은 만신한테 찾아가
이래라저래라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좀 기가찬 일입니다.
하지만 육신을 벗어나면 이런 것들은 한눈에 파악이 됩니다.

죽고 나서 바로 하늘도 가진 않는데
예외적으로 바로 하늘도 오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대게는 머무르다가 맥주 맛이 서서히 빠지고
절반이상 빠지게 되면 하늘을 향해 날아갑니다.

맥주 맛이라 비유한 것은 바로 무형의 백을 말하는 것으로
절반이상 빠진 것을 2단 분리라고 보면됩니다.
1단 분리는 육신에서 막 분리된 상태입니다.
절반이상이면 날아갈 수 있는데
날아가면서 맥주 맛이 대부분 빠져 버립니다. 이것이 3단 분리.

혼이 하늘의 영을 만나러 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한 번은 육체적인 죽음.
한 번은 정신적이 죽음.
그리고 날아가면서 나머지의 것들을 다 떨쳐냅니다.
다 떨쳐내고 하늘의 영을 만나러 갑니다.
하지만 기억들마저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들에 대한 애틋함이 맥주 맛이라 치면
나중에 영을 만나러 갈 무렵은 담담해집니다.
살아있을 때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살이 떨리지만
하늘의 영을 만너러 갈 무렵에는 그런게 없어집니다.

1단 분리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져 쉬운데
문제는 2단 분리에서 생깁니다.
보통은 50일 미만에 세상의 미련이나 집착, 아쉬움, 정 등을 절반 정도 내려놓아야하는데
10에 5명 정도는 분리가 안되어 못 날아갑니다.
50일이 지나 막차를 놓치면 가고 싶어도 못가게 됩니다.

육체가 없는 혼은 집착을 놓지못해 떠돌이가 되고
자신의 아내나 자식이나 다른 합이 맞는 사람에게 들어갑니다.
사람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공간이나 쓰던 애장품이나 죽은 현장 등에 머물게 됩니다.

보통은 귀신이 자유롭게 돌아다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음체화된 귀신은 동력이 없어 보통 그 공간에 매여있습니다.
물에 빠진 귀신이 그곳에 몇 십년간 머물러있기도 합니다.
사고난 곳에서도 몇 십년간 오도가도 못하는 혼들이 많습니다.
집단 학살을 당한 곳에서는 60년, 70년 이상 오도가도 못하고 머물러 있습니다.
교도소 보다도 더 구속당하게 되며
100년, 150년을 그 자리에서 머무릅니다.
똥통에 빠진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늘동그라미에 오는 사람들은
주위에 그런 혼들이 있는 지 파악해서 올려주는데
이것은 참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들은 우주를 넘나드는 존재이고
지구와 우주와 하늘에 다차원적으로 펼쳐져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우주인인 우리의 존재의 대표선수는 영이고
그 영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 백성입니다.
육체와 정신, 혼과 영 중에서
나의 대표선수가 영이고
나의 본성이 영이며
그 영은 하늘의 분신이고
나의 하늘이며
그래서 나는 하늘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많은 생을 거듭하면서
윤회하고 먼 길을 떠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늘을 알아가는 삶,
하늘을 가까이 하는 삶,
그것이 순천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선택지가 아니고 운명이고 숙명입니다.
거기서 벗어나 거꾸로 가는 것은 역천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계속 될지 단언할 수 없습니다.
나의 혼과 영이 밑그림을 그린 세상살이는
곧 내가 그린 밑그림이며 계획입니다.

그림이 마음에 안든다면 수정하고 고치면 됩니다.
꽃을 그려넣고 싶으면 그리면 되고
구도를 바르게 잡고 싶으면 잡으면 됩니다.
이 붓대는 내가 잡고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깥에서 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도적인 존재이고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모두 내가 결정했습니다.
내 혼과 나의 영이 한 것이므로 내가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주도성을 잃어버리면
눈치보고, 핑계대고 변명하고 종업원처럼 행동하며
생명체의 주인으로서 주인의 자리는 놓쳐버리고
의지하고 노예처럼 또는 식민지 백성처럼 비굴하게 살아갑니다.
이것은 내 존재에 대한 모독입니다.

나의 생활에
나의 사고체계에 그런 것이 있다면 흘려보내야합니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고
이 순간을 만납니다.
주인된 삶이 아니라면 문제의식을 가져야합니다.
나다운 삶이 아니므로
주도적인 존재로 살아가야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만년의 삶을 살아온 그런 존재입니다.
그림이나 도자기로 치면 만년 이상 흐른 작품입니다.
자신을 하찮고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그런 싸구려 존재가 아닙니다.

아까 낙제생 얘기를 했던 이유는
우리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놓는 것.
버리는 것.
받아들이는 것.
흘려보내는 것.
이런 것들을 훈련하고 준비를 해야합니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안되어 있으면 죽어서도 이어지게 되고
통통에 빠져서 100년 150년을 감옥보다 더한 곳에서 헤매게 됩니다.
본래가 하늘백성이기에
100년 150년 후에는 하늘로 흡수가 되지만
우리는 먼 길을 가는 여행자로서
내려놓고
버리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내야합니다.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가볍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새싹회에는 기통자들이 계속 나오고있습니다.
기통이 된 사람들은
머리위에 하늘동그리미가 머리위에 떠있고
온 몸이 빛으로 채워집니다.
빛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이 영글어지고
백회가 열리며 하늘동그리미까지 생겨야 됩니다.

간난 아이들은 백회 정수리로 발딱발딱 숨을 쉬는데
머리 위에 가는 테로 이게 보입니다.(새싹회의 하늘동그라미 모양은 아닙니다)
백회가 열려져 막이 좀 씌어져있는 형태입니다.
단전도 하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살아있습니다.
4~5살이 되면 단전이 하늘의 기운을 받을 수 없는 형태로 접혀지고
백회도 굳어집니다. 닫혀버리죠.
머리 위의 가는 테도 사라집니다.

4~5살이면 세상을 알아가는 나이이고
개념을 배우고 말을 배우며 현상계에 적응해갑니다.
이런 과정에서 설계해온 중요 포인트들을 놓쳐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기통을 하면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이 살아나고
이것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온 몸에 기운의 도로들이 뚫리고
상단전의 송과체에 불이 들어오고
백회가 열려 우주와 연결되고
하늘동그리미가 생겨 하늘과 연결됩니다.

송과체에 불이 들어옴으로서 우주와 하늘과 교신하는 장치가 활성화되고
백회와 하늘동그라미가 열림으로 해서 우주의 기운과 연결됩니다.
논으로 비유하면 말라가던 논에 물이 연결되어 논이 살아나는 이치입니다.

하늘동그라미가 생기면서
우리는 하늘 백성으로서의 소속감을 가지게 됩니다.
국적없이 떠돌던 사람들이 국적을 회복했을 때 느끼는 귀속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들은 그런 존재들입니다.

내 안에 모두 다 있습니다.
제약공장도 있고
전담 주치의도 있고
수많은 능력과 가능성이 있으며
하늘 마음을 품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스스로 제한하고
몰아세우고
벌을 받아야만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벌을 받아야한다고 자해하고
모진 병에 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해공갈단입니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를 잘 살피고 알아서
미몽에서 깨어나고
온전한 내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 이 강의 목표입니다.

내 안의 전담 주치의를 살아나게 하면
지금 우리 인류는 많은 병들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은
바로 잡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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